“더 예측이 어려워졌다.”
서울 서초구 소재 한 대학입시 전문학원 강사는 이번 수시모집을 이 한마디로 평가했다. 초유의 의대 정원 증원과 21년 만에 역대 최다 N수생이 수능을 접수한 가운데, 2025학년도 수시모집이 지난 9월 13일 마감됐다. 대입 학원가와 입시 전문가들은 의대를 노리는 상위권 학생들의 소신 또는 상향 지원이 두드러졌다고 분석한다. 의대 증원이 현실화되면서 합격선이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따로 있다. 수시모집 여파가 의대를 지원한 수험생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중상위권 학생과 다른 계열 지원자 등 모든 수험생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입시 전문가들의 평가다. 단순히 의대 지원자가 많아 수시 전형이 골치 아파진 것이 아니다. 의대 지원자 중 다수의 중복 합격자가 발생할 경우, 그 이후 추가합격까지도 영향을 미쳐 수험생의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
수능으로 대표되는 정시도 예외가 아니다. 수시모집에 지원한 다수의 수험생은 합격을 위해 수능 최저 등급 기준을 맞춰야 한다. 이런 가운데 상위권 학생들이 대거 수능에도 응시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본 수능에서 변별력 확보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인재 전형↑… 이탈과 추가합격 부른다
우선 의대 증원에 따른 수험생들의 지원 추세를 살펴봐야 한다. 종로학원 등에 따르면 지난 9월 13일 수시 원서접수를 마감한 전국 39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인 차의과대 제외·정원 내 기준)에는 최종적으로 7만2351명이 지원했다. 이는 5만7192명이 지원한 지난해보다 26.5%(1만5159명) 늘어난 수치다. 정부가 현재까지 확정한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은 4610명으로 지난해 대비 1497명 늘어난 숫자다.
특히 정원이 크게 늘어난 비수도권 대학 지역인재 전형으로 의대 원서를 넣은 지원자 수가 대폭 증가했다. 비수도권 26개 의대 지원자 수는 1만9423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8369명보다 2배 이상 대폭 상승한 것이다. 앞서 증원에 따라 비수도권 의대의 지역인재 선발인원은 2024학년도 800명에서 2025학년도 1549명으로 1.9배 늘었다. 이는 의대를 희망하는 수험생들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됐다. 입결 하락을 기대하는 지원자들이 전략적으로 원서를 접수하면서, 경쟁률 역시 전년도 대비 2.3배나 증가했다.
구체적으론 충청권 의대 지역인재 전형에 지원자가 많이 몰렸다. 충청권 지원자 수는 지난해 1213명에서 5330명으로 4.4배 폭증했다. 충북대의 경우 20.9 대 1을 기록하기도 했다. 대구·경북권 경쟁률 역시 지난해 12.5 대 1(1962명)에서 13.8 대 1(4237명)로 높아졌다.
문제는 비수도권 의대에 지원자가 크게 늘면서 수도권 의대와 중복 합격자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6개의 수시 원서 중 지원자가 최종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학교는 단 한 곳이다. 입학을 포기하는 대학이 생길 경우, 해당 대학은 차 순위 추가합격자를 통해 정원을 충족한다. 결국 최상위권 대학을 비롯한 자연계와 이공계열 지원자들은 비수도권 의대 합격자 중 수도권 의대에도 합격해 수도권 대학으로 옮겨가는 이탈자들에 따라 당락이 결정될 수 있다.
가령 비수도권 의대 합격자 명단에서 이탈하는 학생들이 많을 경우, 이들 대학에 대한 충원은 추가합격자를 통해 이뤄지게 된다. 이공계열 최상위권 대학과 중복으로 지원했던 학생들에게 의대 합격 기회의 문이 열리는 셈이다. 연이어 최상위권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비수도권 의대로 빠져나간 학생들이 발생하면, 이번엔 자연·이공계열 최상위권 대학이 합격자들을 다수의 추가 합격자들로 충원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은 중상위권 대학까지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수시 전형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위권 N수생·비수도권 의대생도 몰려
서울 양천구 소재 고등학교 3학년인 윤모(18)군은 “이번에 N수생이 유독 많은 것 같다”며 “이미 학교에 다니던 의대생도 원서를 넣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윤군의 말처럼 올해 N수생은 21년 만에 최다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2025학년도 수능 응시원서를 접수한 수험생은 총 52만2670명으로 나타났다. 그중 N수생과 대학 재학생 등을 포함한 졸업생 지원자는 16만1784명으로 전체 수험생 중 31%를 차지했다. 수험생 수만 보면 2004학년도(18만4317명) 이후 가장 많다.
특히 올해는 의대 증원과 맞물려 이미 대학에 다니고 있던 ‘상위권 N수생’들도 대거 입시에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비수도권 의대에 재학 중이던 의대생들도 서울 상위권 의대 진학을 위해 원서를 넣은 것으로 풀이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통화에서 “지난해 6월 모의평가를 보지 않고 수능을 치른 수험생이 8만9000명이었다”며 “올해는 9만3000명으로 4000명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이어 “증가한 4000명에 의대에 재도전하는 수험생들이 분명히 포함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50만명이 넘는 전체 수험생에서 4000명은 크지 않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의대를 지원하는 최상위권이거나 수능 2등급 이내에 해당하는 상위권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바로 수능 최저 등급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수시모집에 지원한 수험생들은 각 대학과 전형이 요구하는 최저 등급을 맞춰야 한다. 상위권 성적을 가진 수험생이 정시 시험장에 나타나는 것은 자신의 최저 등급 충족 여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변수로 작용한다.
평가원 입장에서도 수능 출제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앞서 6월과 9월 모의평가에 응시하지 않은 상위권 수험생들이 수능 당일엔 대거 응시하기 때문에 변별력 확보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앞서 윤군은 “(상위권 N수생을 고려한다면) 수능이 어려워질 것 같기도 하다”면서 “애꿎은 고3 현역 수험생만 밀리는 것 아닐까 싶다”고 걱정했다. 임 대표 역시 “(졸업생 응시자 중에서는) ‘중위권부터 중상위권 대학까지도 합격 점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학 재학생들도 원서를 넣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수능 변별력이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D-50’ 깨진 수능… 증원은 아직도 물음표
한편 정부와 정치권은 수능이 50여일도 채 남지 않은 현재까지도 내년도 의대 증원 갈등을 여전히 봉합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여야의정 협의체를 제안하면서 2025년 의대 정원 증원도 협의체에서 재논의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늦었다는 입장을 보이며 논의 불가로 선을 그은 상태다.
이와 관련 임 대표는 “의대 증원 백지화는 힘들어 보인다”면서도 “대학별로 추가합격 인원을 조정해 입학 인원을 줄이는 방법이 있긴 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컨대 중복 합격자의 이탈로 인해 추가합격자를 발표할 때, 예비번호 몇 번까지 (합격자 충원으로) 발표할 것인지는 대학이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떤 대학의 경우 6차나 7차까지 추가합격 전화를 돌릴 수 있지만, 다른 대학은 1~2차에서 끝낼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 대표는 “원칙적으론 대학이 자율적으로 최종 합격 인원을 조정할 수 있지만 추가 합격 횟수가 예년과 다르다면, 극렬한 저항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