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국가의 중추 인력을 양성하고 연구를 통해 지식을 축적하는 두 가지 기능을 갖는다. 교수의 역할은 강의와 연구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등록금을 높게 책정해 재정을 튼튼하게 하면 교수에 대한 높은 대우, 충분한 시설 투자와 연구비 지급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등은 휘어질 것이다. 부유층이 다니는 미국 사립학교라면 모를까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대학에서는 곤란한 일이다.
대학은 대체로 등록금 인상을 통한 재정 확대를 추구한다. 수익 사업이 마땅치 않은 상당수 대학들은 그러하다. 1960년대 ‘우골탑’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당시 시골의 부모들은 농사에 불가결한 소를 팔아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다. 부모들 눈에는 멀쩡한 소가 사라지고 뼈만 남아 쌓인 것으로 보였다. 소와 대학 졸업장을 맞바꾼 것이다.
대학은 재정 확충을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 대학 정원이 존재했으나 이를 외면하고 초과 인원을 뽑는 학교가 속출했다. 청강생이라는 이름으로 기부 입학을 허용했다. 정부가 정한 한도 이상으로 등록금을 올릴 수 없었으나 일부 대학은 이를 무시했다.
정부가 특별 감사 및 총장 임명 취소 등으로 으름장을 놓으면 총장들이 단합해 대항했다. 요즘 풍경과 비슷하다. 슬슬 뒤로 밀리던 정부는 1969년 대학 입학 예비고사라는 보도를 꺼내 들었다. 정부가 원천적으로 입시를 총괄해 대학의 입시 부정을 막고 증원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예비고사는 이후 수학능력시험으로 발전했다.
문교부는 경제기획원과 협의해 등록금을 책정했다.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에 맞춰 등록금을 인상하는 식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1989년 노태우 정부는 사립대 등록금 책정을 자율화했다. 어느 정도 경제가 성장해 감당할 능력이 생기고 대학의 불만도 해소하려는 차원이었다.
대학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재정 확충이 필요하기도 했다. 공사립 대학간 등록금 격차가 커지자 2002년 김대중 정부는 국공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를 취했고 등록금이 매년 폭등했다. 댐의 수문이 열리자 폭발하듯 물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등록금을 올리면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에서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불을 붙였다. 2011년에는 반값 등록금을 위한 대학생 시위가 벌어졌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립대학에 반값 등록금을 도입했다. 그러자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반값 등록금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다.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2012년 국가장학금이 도입됐다. 크게 1과 2유형으로 나뉜다. 1유형은 소득 수준이 낮은 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장학재단에서 지급한다. 2유형은 정부가 지원한 재원을 바탕으로 대학이 자체 기준을 정해 지급한다. 그러나 정부가 정한 기본 기준이 있어 소득 수준을 10구간으로 나누고 소득이 낮을수록 더 많이 지급하도록 돼 있다.
2010년 고등교육법을 개정해 등록금 인상률이 직전 3년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하지 않도록 규제했다. 교육부는 대학 재정 지원 사업에 등록금 인상률을 연계하고 등록금을 인상하는 학교에는 국가장학금 2유형 지원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통제했다. 학교가 등록금을 올리면 재정 지원이 줄 뿐 아니라 학생들의 실질적인 등록금 부담이 늘어 지원을 꺼리게 될 수도 있다.
정책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2011년 이후 등록금은 매년 동결에 가까운 낮은 수준으로 인상됐다. 통계청 조사에 등록금이 부담된다고 답변한 가구의 비중은 2010년 81.3%에서 2022년 60.6%로 낮아졌다. 학생들에게 지원하는 교내장학금·국가장학금 등 학생 경비는 2011년 2조 8960억원에서 2022년 5조 1042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부작용도 나타났다. 대학의 연구비와 시설 투자비가 줄어들었다. 사립대 연구비는 2011년 4501억원에서 2022년 4429억원으로 감소했다. 실험 실습비는 2163억원에서 1598억원으로, 토지 매입비는 1932억원에서 525억원으로 낮아졌다.
교수들 연봉 상승도 억제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9~2023년 교수 급여는 사립대가 1억 62만원에서 1억 139만원으로 0.8%, 국공립대가 1억 1011만원에서 1억 1873만원으로 7.8% 올랐다. 낮은 수준은 아니지만 대기업이나 미국에서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는 현저히 떨어진다.
올해 등록금 인상 법정 상한선은 5.49%다. 코로나19 사태로 물가가 많이 올라 등록금을 올릴 여지가 늘어났다. 그에 더해 최근 정치적 혼란으로 정부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여러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등록금을 올릴 때 재정 수입 증가분이 정부 재정 지원 감소분을 능가한다고 보는 것이다. 일단 베이스가 늘어나면 다음 번 인상으로 얻는 증가폭도 늘어난다.
지난해 우리나라 연 평균 대학 등록금은 682만원으로 국립대학 427만원, 사립대학 763만원이다. 일부 사립 명문대의 경우에는 900만원을 넘는다. 2023년 미국 4년제 주립대학 2만 321달러(약 2966만원), 사립대학 2만 9283달러(약 4275만원)에 비해서는 크게 낮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그리 싼 것은 아니다. 일본 국립대학(530만원)과 사립대학(960만원)보다 약간 낮지만 대만에 비해서는 4배 이상 비싸다.
대학 자율에 맡겨 놓은 미국의 경우 지난 20년간 등록금은 두 배 인상됐고, 이는 학자금대출 증가로 이어졌다. 2023년 1인당 학자금 대출 규모는 2만 9374달러(약 4288만원)에 달하며 지난해 2분기 총 학자금 대출 규모는 1조 5900억달러(약 2321조원)에 달한다. 학생들은 등록금 부담에 짓눌리며 졸업 후에도 이를 갚느라 허덕인다. 퇴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마지막 선물로 학자금 대출 탕감을 시행했고, 이는 뜨거운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23년 사립대 적립금 총액은 11조 1358억원이며 신규 적립금은 1조 1939억원에 달한다. 사립대 회계는 등록금 수입이 주 재원인 ‘등록금회계’와 기타 수입으로 구성되는 ‘비등록금회계’로 구분된다. 이 중 등록금회계에서 적립한 금액이 2368억원으로 나타났다.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등록금 규제 때문에 대학이 재정난이라는 주장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상당수 지방 사립대가 재정난을 겪는 이유는 등록금 의존도가 너무 크고 수도권 집중과 저출생으로 학생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미 등록금 인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태이며 대학 통폐합 등 구조조정으로 풀 문제다. 정부는 ‘글로컬대학 사업’을 통해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재정 여유가 있는 사립대의 경우에는 적립금 및 정부 재정 지원의 사용 용도를 제한하는 칸막이 규제를 완화하고 수익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학교 곳간이 학생들의 희생으로 채워지지 않도록 대학의 재정 구조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
